책을 대하는 태도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보통사춘기라 불리는 시절,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몇권 읽었었다.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윤후명 하얀배, 윤대녕 천지간. 등등

작가와 제목은 생각이 나지만 내용은 웬걸. 흐릿하게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는 책을 읽는다기 보다 골랐던 것 같다.

웬지 멋진 이름의 책과 있어보일만한 것들.

새로 나온 이쁘장하게 포장된 책과 웬지 시덥잖을 것 같은 사랑, 우정 따위의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은 피하고, 책 표지만 보아도 고풍스럽고, 책을 든 사람을 사색 가득하게 만들어줄 것 만 같은.

죄와 벌,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괴테 전집 이런 류들. 이 딴 책들 읽었노라고 자랑하고 싶고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떠들고 다니고 싶은 욕구.

제목부터 난해해야하고, 읽기 어려워야 하며, 무어든 심오한 진리가 닮겨져 있을 것 같은 책들.

이상문학상도 그런 이유로 골라졌다.

겁나게 있어 보이지 않나.

폐병을 고치기 위해 문학에 뛰어들고, 난해한 글들을 쓰고, 불온사상에 찌들고, 요절하는.

고뇌에 미쳐 죽고 만것 같은.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웬지 근사한 삶이지 않은가.

당시 이상문학상에 당선된 글들은 충분히 읽기 어려웠고, 무슨 말을 써대고 있는지 몰라 더욱 기뻤다. 나는 그런 책도 읽은 사람이니까.

고3때 논문 본고사던가 그거 모의 고사를 쳐서 전국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보고 역시 나는 그런 책들 두루 읽어서 그런거야 라면서 혼자 으스댔었고, (가보로 물려주려 했는데,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능 언어영역 성적표를 받아 보고 개똥같은 입시제도라며 술이나 퍼먹고. 나 같은 문학천재가 평균이하라니.

유나가 읽을 한국 책들을 빌리러 피츠버그 대학 도석관에 갔다.

이 곳에 한국책들이 꽤 많이 있는데, 요즘에 활개치는 비상식적 정치인들과 그 아류들이 본다면 이 도서관은 좌빨 도서관이요 이 대학은 좌빨 대학이다. 불온 서적들 가득하며, 90년대 대학 학생회실이나 사회과학 동아리들에 쌓여있을 만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꽤 반가운 일이다.

이상문학상도 다 있는 것 같진 하지만 1회 77년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부터 소장되어 있다. 

이런 기억들이 새삼 떠올라 2008년 작품집을 빌려와서 대상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읽었다.

그 어릴적 같았으면 얼토당토 않았겠지만, 무심코 대상 심사평이 맨 앞에 있길래 먼저 읽고 작품을 보았다.

40페이지 남짓 되는 글이 술술 읽힌다. 사랑과 실연에 관한 고찰 정도로 느껴진다.

내가 변한건가 이상문학상 심사기준이 변한건가.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한 덕분에 이깟 이상문학상쯤은 한쪽 눈 감고도 읽을만 한가.

책 읽는 것에 목적따위가 어디 있으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게 머라고.

그냥 읽고 마음이 일면 생각해보고. 작품을 평하는 게 책 읽는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는 아니니까.

2008년도 작품집도 읽었노라고 삐댈 이유도 이젠 없어졌으니까.

지금도 나같은 생각으로 책을 고르는 아해들이 있겠지? 머 나쁜건 아니니 독려를 해주마. 

그래도.

책 한자 더 읽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가르침이 딱 맞아서

복권 번호 찝어내는 영감이나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