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초기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달콤한 인생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기억하진 못하지만 50번 가까이 보지 않았을까. (미쳤다는 소릴 들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 과감히 토론을 해보거나 파헤쳐 보거나 그러진 않았다. 흘러가는 대고 보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나 신기한 점에 대해서는 그저 그런대로 생각하고 있다.
오늘도 작업을 하면서 옆창에 띄워 보고 있다가, 도대체 저 영화는 나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고 어떤 매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리해본다.
영화의 모든 것이 김선우의 상상이다?!
웹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이건 김선우의 꿈이다. 아니다. 영화 초반 룸에서 행패를 부리는 3명을 때려주시고 올라와 정산을 한후 대빵(김영철)에게 영업종료 보고를 하고 에스프레소 잔에 각설탕을 하나 똑 떨어트리고 창가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불빛찬란한 창 밖을 응시한다. 그리고 영화는 순간적으로 점프하여 대빵과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그리고 온갖 일들이 일어난 후, 영화는 창밖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돌아오고 그대로 끝이난다.
김선우의 상상이라는 강력한 증거들은 물론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똑같다거나, 영화 시작에서 버드나무가 흔들리며 시작하는 나래이션이 커피마시는 장면으로 되돌아올 때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래이션의 내용에도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그럴수 있으나 이는 감독의 다른 의도일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신민아에 대한 흔들리는 마음으로 결국 일이 벌어졌고, 죽음에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끝장면에 '흔들리는 것은 니 마음이다'라는 나래이션을 삽입했을 수 있다는 얘기.
그런데 끝부분에 존재하는 이병헌의 표정과 몸짓이 첫부분에 나오는 것과 차이가있어 보인다. 첫부분의 이병헌의 커피마시는 얼굴과 끝부분의 커피마시는 얼굴 표정은 사뭇 다르다. 끝에 나온 이병헌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다. 그리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주먹을 휘둘러본다. 누가 볼까 챙피해서 뒤를 힐끔 쳐다보고 계속 주먹을 휘두르다 영화는 끝난다.
왼쪽 사진은 영화 첫부분, 가운데 사진은 끝부분. 오른쪽 사진은 쉐도우복싱.
영화내용이 상상이 맞다면, 커피마시는 동안 상상을 했다는 것인데 그 상상을 하고 나니 스스로 뻘쭘해주고 달아오르기도 했을 것 같다. 남자들이 멍때리면 하는 그런 공상끝에는 왠지 쑥쓰럽고 그렇기도 하는 것처럼. 상상의 내용도 참 그렇다. 내가 주인공이니 나는 스펙타클한 어떤 사건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무쟈게 강력하기 때문에 그 모함에서 기가막히게 탈출하고 멋지게 복수. 그리고 남자란 나의 마음에 있는 여자에겐 알듯말듯 내 존재를 알리고 싶고 지켜주고 싶고 어리버리하기도 한다. 마지막의 죽음은 그런 스토리에서 항상 남자들에게 멋지게 다가온다. 이런 상상을 하고 얼마나 스스로 뻘쭘할까. 주먹을 휘둘러 보는 것도 그런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자연스런 행동이 아닐까? 뒤를 돌아보아 누군가 쳐다보고 있을까 챙피해하는 것은 아마 주먹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것보다 자신의 상상이 들킬까봐 그것이 더 걱정되었던 것일게다. 세놈 패고 영업마치고 커피마시다가 그냥 쉐도우복싱 하는 것은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 짧은 시간에 그 작은 에스프레소잔에 있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그 많은 상상을 한다는게 말이 안될 수 있지만, 그 순간의 상상이 아니라 마초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면 평소에 그런 일련의 상상 하나쯤은 머릿속에 두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생각에는 '상상'이다 라는 것인데, 김지운 감독이 직접 현실이다라고 했으니 머 냠냠..
김선우 후려치는 외국인 (필리핀) 세명의 대화
김선우가 맥주사러 갔을 때 편의점에서 필리핀 애들 세명이 뭐라 쏼라쏼라거리고 있다. 자막도 없고. 그들의 대화를 크게 한 것은 일종의 복선 같은데.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저새끼가 우리가 깔 새끼' 혹은 '저새끼 죽을지 모르고 맥주 사가네' 이런거? 그런데 실상은 한국에 대한 불만과 욕이었단다. 다른 대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너무 연기를 못해 그냥 욕이라 하라고 했나 보다.
뜬금없는 에릭(태구)의 등장
감독의 의도는 '인생이란 인과율과 전혀 관계 없이 엉뚱한 결과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몇번을 봐도 두고 두고 아쉬워진다. 영화흥이 갑자기 깨지는 느낌이랄까. 엉뚱한 결과로 좌우되는 것은 좋은데, 에릭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에릭이 죽은 총기밀매하는 대빵 동생이라 죽인놈 찾아서 죽이러 간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혹자들이 말하듯이 인기짱인 에릭을 넣어 여성관객을 끌어드리려는 수작? 하하하.
명구(오달수)와 함께 있던 러시아인.
그 러시아인은 미하일은 바딤이라는 발레하는 배우인데 연기력이 뛰어나서 캐스팅이 되었다고 함. 김선우와 만나는 첫 장면 차안에서 명구와 주고받은 내용은 "뭐 내가 또라이라고 이 병신아" "너 또라이 맞잖아" "내가 왜 또라이야 고등학교도 나왔는데". 머 이런 내용이었다고.
백사장(황정민)의 출연과 죽음
최고의 조연 백사장
황정민은 원래 문실장역으로 캐스팅을 할라 했는데,
황정민 자신이 문실장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감독이 다른 역이라고 꼭 함께 하고 싶어 특별출연을 했는데, 사실 그게 제일 대박이다. 백사장 캐릭터는 어디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는 것 같다. 백사장 짱.
백사장의 죽는 장면은 원래 한강 어디 공원인가에서 하기로 했는데 겨울이라 분위기 안나 체육관에서 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죽는게 너무 멋이 없고, 죽은 다음 잡히는 빨간 피와 백사장은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백사장이라면 좀 더 양아치스럽지만 거친 곳에서 좀 더 거칠게 죽었어도 좋았을 것을.
CG 혹은 촬영 세트
확실한 야외신을 제외하고는 김선우가 바라보는 창밖, 호텔, 룸, 바, 일식집 등등이 CG 혹은 촬영세트 였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 없음.
문실장이 누구지?
나만 그랬나. 저런 걸출한 연기와 걸출한 인상(?)의 배우가 있었던가? 그런데 살인의 추억의 그 김뢰하였다. 내 눈만 삐꾸였나. 너무 너무 달라보였다. 지금은 김뢰하가 유명해서 금방 알지만, 그땐 정말 몰랐음.
살인의 추억의 김뢰하 달콤한 인생의 김뢰하
청각뿐 아니라 오만각을 자극하는 사운드.
명대사 말고, 영화내내 자잘자잘하지만 기억에 남는 사운드 혹은 대사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예를 들어서
초코케익(?) 뜨는 소리와 숟가락이 치아와 부딪치는 소리 - 영화 초반 김선우가 앙증맞은 초코케익을 먹을 때
팔찌 짤랑거리는 소리 - 초반 세놈 무찌를 때 하나 둘 셋 셀 때 진구의 팔찌 흔들리는 소리
스트레이드 잔에 담배꺼지는 소리 - 백사장이 스트레이트 잔에 담배 끌때
"전복입니다" - 일식집에서 서빙하는 여인의 목소리. 아무 의미없지만 귀에 맴도는 소리.
"샹하이 출장을 가야하는데" - 상하이도 아니고 샹하이. 아 멋져.
"나이트클럽" - 총기밀매 대빵 김해곤이 명함보면서 내뱉는말.
김해곤
여담이지만 김해곤의 코믹은 연기가 아니라 몸에서 배어나오는 듯 했다. 이제 의자에 깊숙히 앉아 있는 그 장면만 나와도 웃음이 나올 지경.
이래 저래 할 말이 많은 영화다 이영화는. 아 좋아요.
2 개의 덧글:
저는 초반부와 마지막 장면은 현실이라고 봅니다. 선우는 조폭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참 깔끔한 사람이죠-그건 초반부 초밥집 장면에서 드러나죠...그런 깔끔한 사람이 보스의 여자친구가 바람이 났다고 죽이라고 하니 그걸 선우가 하고 싶겠습니까....죽어도 하기 싫죠 그러나 해야 할 일이죠....결국 선우는 여자를 죽인거고 ..여자를 살려주고 두목과 싸우는 장면은 상상이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제해석은 이렇습니다
@cmena - 2010/07/21 17:03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이군요 ^^ 그렇다면 죽이는 장면이 안나온게 정말 다행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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