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와서 진지하게 읽었던 태백산맥. 삼국지도 아닌데 그 이후로 서너번은 더 읽었다. 분단상황에 대한 사상적, 정치적 내용 뿐 아니라 첫권부터 마지막권까지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감과 중간중간 흥미로운(?) 읽을 거리 때문이었으리라.
16년전 태백산맥을 영화로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반공의 기운과 이른 바 '좌빨'논리가 만연했던 때였고, 아마 노무현대통령이 대통령 되는 일(웅?)은 상상도 못할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작년 강풀원작 26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가뿐히 짐작가는 이유에서 중단된 일을 돌이켜보면 태백산맥의 영화화는 어쩌면 한국 민주주의 성숙의 한 단계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다시 몇 발자국 후퇴하는 것 같아 그 의미가 더 새롭기도 하다.
소설은 많이 읽었어도 영화는 보지 않았다. 주위의 만류때문에.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못 만들어졌고를 떠나 그 내용면에서 원작이 담고 있는 것들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염상진, 김범우, 손승호, 심재모, 염상구 등으로 대표되는 사상 혹은 관념들. 그리고 각 관념마다 많은 인물들을 통하여 해석해내는 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저번주 무릎팍도사에 김갑수씨가 나와 영화
태백산맥에 관한 얘기를 했다. 김갑수씨는 염상구역이었는데 남우주연상을 몇개 받았다고 한다. 음... 김갑수씨정도면 연기를 잘 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주연'상이라니. 물론 소설 태백산맥에 주인공은 없다. 아니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 주인공이 있다. 염상구도 그 중의 한명일 수 있겠으나 다소 무게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았다. (무릎팍도사의 영향때문인지오래된 영화이지만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 잘 만들어졌네 하는 생각이 그냥 들었다. 흥미롭거나 긴장감이 있진 않지만 94년이면 마누라 죽이기,너에게 나를 보낸다 (아.. 궁뎅이..)가 만들어졌을 때이니까. 그리고 오 역시 김갑수! 상 탈만 하구만하는 생각. 외서댁 베드신 죽이네 하는 생각 (음........) 내용을 꾀고 있는 터라 외서댁의 심각함은 그다지 들어오지 않아서 ^^: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먼저, 김갑수씨가 연기를 너무 잘한 것도 있지만 그 외의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거나 배역에 맡지 않았지 않았나 싶다. 염상진역을 맡은 김명곤씨는 덜 날카로왔고 김범우역을 맡은 안성기는 너무 여려보였고, 하대치도 좀더 강단졌으면 하는 아쉬움. 그래서 김갑수씨가 상을 탄 이유는 영화가 좋은 영화였음은 물론이고, 그런데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 딱 맞는 연기를 한 것은 김갑수가 제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소설의 염상구의 이미지는 김갑수씨랑 어울리지 않는다. 염상구는 키가 작고 아주 땅땅하게 생긴 이미지. 바램이 있다면 이문식의 키와 분위기에 김갑수씨의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로 염상구로 동화한 것은 아주 훌륭했다고 봄.
그리고 소설이 전하는 사상의 다양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긴장감이 영화에서는 없었던 듯 하다. 강조 된것은 남북의 분단, 좌우의 대립, 그래서 북아니면 남. 내 생각에는 조정래씨는 소설에서 분단이라는 상황때문에 당시 우리나라가 남북, 좌우, 흑백이란 논리로 점철되었다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오히려 그런 점을 강조한 듯 느껴졌다. 분단 시기에 꽃폈던 그러한 다양한 사상들을 온전히 담고 흘러왔으면 우리나라는 좀 더 성숙했을 것이라는 게 조정래씨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김범우와 염상진의 대립
소설에는 무수히 많은 대립들이 존재한다. 김범우와 염상진, 염상진과 염상구, 심재모와 지주들, 심재모와 염상진, 하대치와 공산당간부, 안창민과 염상진, 셀 수 없이 많은 대립. 그런데 영화에서는 김범우와 염상진, 염상진과 염상구의 대립만이 나왔고 그 조차도 너무 가볍게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2시간 반정도로 다른 영화에 비해 길었지만, 소설을 담아내기에는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을 안다. 아주 섬세하고 구체적인 소설의 마디마디를 따라 하기에는 120부작 수목드라마도 부족할 듯 싶다.
그래도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좋은 시나리오가 이미 나와 있으니 찍기만 하면 되는 거 아녀~~~~ 하하하. 시리즈 10개짜리 영화로 만든다 해도 다 보러갈 의사가 있는디.
태백산맥을 보고 사실 더 아쉬운 것은 이런 것.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만드는 데 사상을 따지적 정치적 이해를 따지는 현실이 더 아쉽다. 26년이 제발 26년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으로 영화화 되길. 58년 이런 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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