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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5, 2010

군대에서 한글 자격증 도전기

군시절 나와 같은 내무반 동기들은 한글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들은 그 험하고 춥고 먹을것 없는 강원도 1군 어느 사단의!  행정병들이었다. 아 부끄러.

우리의 도전과제는 자격증이 아니었다. 자격증을 따면 특박을 준다는 대대장의 말에 특박을 얻는게 우리들의 목표였다. 게다가 시험 장소가 군대 내부가 아니라 어느 여중이었다! 중이 중요한게 아니라 '여'가 중요한 것이었고, 일단 위병소를 벗어나 어느곳이든 가는게 너무나도 설레는 일이었다.

행정병들은 키보드를 무쟈게 빨리 친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다지 빠르지 않다. 물론 보통은 된다.
10년전 우리들의 평균은 아마 5-600백타정도. 이정도는 지금은 아무나 다 친다. 그냥 한글타자연습에서 타수빠르기로 대결하면 행정병들이 특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잘 하는 것은 한글의 모든 단축기를 외우고 써먹는 것. 마우스가 필요없었으니까. 어느 혹독한 고참은 마우스에 손을 대면 손등을 후려 갈기기도 했단다. 발로 만지면 되지. 음.. 불러오기, 저장하기 같은 기본 단축키부터 문단복사, 글자모양, 스타일, 표편집에 필요한 단축기, 또 뭐냐. 암튼 온갖 단축기들을 쓸 수 있으니, 평범한 문서작성 말고 스타일도 있고 글자크기도 제 각각이고 들여쓰기 내어쓰기, 복잡한 표가 들어있는 문서의 경우는 일반인과 한참 차이가 났다.

한글자격증(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다.) 실기 시험은 그런 문서를 만드는 시험이다. 제한시간은 초본 15분 수정 10분이었던가, 25분 혹은 30분 안에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아래 그림 같은 것.

<한글자격증 실기 시험 아마 이런것이었다>


수식도 있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저것을 일반인이 30분안에 만들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시험장소 여중 컴퓨터 실습실. 우리 한 15명과 일반인 10명정도가 시험을 같이 봤다. 아가씨도 있고 아저씨도 있고. 내 옆에는 어떤 아저씨가 앉았고 그 옆에는 내 후임이 앉았다. 시험 시작 종이 울리자 우리 육군 장병들은 키보드를 부서져라 타타타타타타타타. 한 5분 그런 소리가 났을까. 조용해졌다. 그저 다다다다 키보드 맛사지 하는 소리뿐. 간단히 점검을 하고 옆을 슬쩍 보니 그 아저씨 땀을 줄줄 흘리면서 반정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원래 실력도 만만치 않은데, 양 옆에서 군바리들이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키보드를 부숴대고 있으니 더욱 긴장하셨나보다. 살짝 미안해졌다. 교정은 15분 후에 시작해야 하지만 우리들은 그냥 다 해치워버렸다. 뭐 감독도 소홀하고. 그래서 10분 조금 넘은 시간. 아마 우리들은 다 끝마쳤나보다.

남는 시간 우리 대부분은 인터넷을 했고, 혹자는 e-mail도 보내고. 혹자는 스타크래프트를 해서 2승을 거뒀다는 전설이.... 뻥.

우리들은 물론 다 합격했고, 3주에 나눠 특박을 나갔다.


아마 지금은 군대에서 더 많은 자격증을 따라고 격려하고 있을 것 같다. 장병들의 미래를 돕는다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고, 하급부대에서는 담당 간부의 승진과 관련이 있으니 엄청 격려를 할 게다.

특박이든, 미래든, 아가씨든(!) 군대에서 자격증을 따는 것은.무료한 군생활에 작은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내 경우는 시험당일 짜장면, 탕수육에 먹었던 빼갈 3잔과 특박이 가장 컸지만. ㅎㅎ


Wednesday, August 18, 2010

존경했었던 김태영 국방장관

국방부 장관이 누구인지 몰랐고 아니 관심이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몸으로서 문화부장관이 누구인지 아는데 국방부장관이 누구인지 모른다는게 죄스럽다. 음.. 뭐가..

천안함 침몰로 국방부장관 이름이 오르내리고 나서야 그 사람 이름이 김태영인줄 알았다. 그러려니 했다. 김태영이라는 사람이 국방부장관이구나. 며칠 기사들을 보다가 안경쓴 국방부장관 사진을 보고 왠지 낯이 익었다.

'넌 누구길래 낯이 익는거냐. 무난하게 생긴얼굴이라 그런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 별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국방부장관의 경력은 국가기밀사안이 아닌지 네이버 인물정보에 고스란히 나와있었고, 내가 그의 얼굴이 낯이 익는 이유를 금방 알려주었다. 현역시절 사단장이었다.

"직속상관 관등성명. 사단장 소장 김태영. 본부대장 개똥이 어쩌고.."

그랬다. 상병을 막달 때 쯤 사단장 교체가 있었고 새로온 사단장이 김태영 현 국방부장관이었다.

10년이 흘렀고, 그 십년 사이에 별둘 소장이 별넷 대장이 되었다.  강산이 변하는 10년을 감안한다해도 다소 빠른 승진이 아닌가? 사단장 이후 경력이 무지하게 화려하다. 화려하다기 보다 최적의 코스를 밟아 국방장관이 되었다.

<김태영장관>

육본근무->국방부근무->수방사령관->함참작전본부장->1군사령관->함참의장->국방부장관

사실 사단장 이후 제대로 간 것도 있지만 그 이전의 경력도 화려해서, 군대에 있던 우리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이미 사단장 시절 국방부 정책기획국 차장 국장등의로 일하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국방부장관 보좌관을 했다.

그래서 군대에 있던 나는 군인의 신분에 충실하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고 그만큼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승진하는데 필요한 더러운 것들때문이라고 생각할 여유는 군대에서 어디에도 없었다.

사단장을 존경한 진짜 이유는 그 사람의 됨됨이 때문이었다. 이전 사단장은 상당히 권위적이었다. 사단직할대 병사들이 모두 모여 하는 뭐냐.. 음.. 그 연병장에 모두 모여서 시상식도 하고 연설도 하고 하는 그거.. 새벽모임? 암튼 그 모임에서 사병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부관참모의 쪼인트를 깔정도였다. 사병과의 대화는 양쪽다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로온 사단장 김태영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일단 관사에서 출근할 때 걸어서 온다. 이는 사병들에게는 끔직한 일. 경례하는 것도 그렇지만 실수하나 했다가 꼬투리 잡히면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세명이 지나가다 출근 길의 사단장을 만나 목터져라 경례를 부치면,
"어 그래~" 하고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준다.
길옆 30미터 쯤 떨어져 있는 대공초소에서 경례를 부치면, 사단장은 몸을 휙 돌려 좀 더 큰 목소리로
"어 그래~" 하면서 손을 거세게 흔든다. 거리가 있으니까 잘보이라고 그러나보다.
어쩌다의 실수가 아니라 매일같이 그런다.

대통령이 권위적이면 공무원이 권위적이 된다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듯이, 사단장이 권위적이면 그 부대는 권위적이 된다. 반대면 역시 그 반대로 된다. 사단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빠졌다는 말이지) 예를 들어 불필요한 아스팔트 물 청소, 나무 괜히 뽑아 자리 옮기기, 눈 이쪽으로 치웠다가 맘에 안든다고 다른 쪽으로 옮기기 등등.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능력도 있는데다 인간적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이번 천안함 침몰 관련 김태영 장관의 태도를 보면서 열받기도 많이 아쉬우면서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마르크스의 인간성이 더럽고 가정이 평화롭지 못했다고 해서 자본론이 이론적으로 흠집이 나지 않는 것 처럼, 한 사람의 인간성이 좋고 훌륭하다 해도 그 사람의 생각이 옳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 권력의 꿀맛을 보고 사람에게는 좀 더 조심해야한다는것.

물론 별넷 대장이고 국방부장관이라하더라도 꼭두각시 역할이어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행동할 지 모른다. 이글에서 나는 그사람을 폄하하거나 동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아쉽긴하다. 기억속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그 기억들이 하나둘씩 없어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에.

Tuesday, August 17, 2010

개념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다

개념이 없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개념이 없다', '개념차지 못하다'라는 표현은 요즘 대다수가 즐겨쓰는 말 중의 하나다. 예를 들면 개념없는 조전혁.

하지만 원조는 아무래도 군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진정개념이 없던 이를 만난 군대 얘기를 하려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겪었던 일들.

군대에서 개념없다는 말은 어느 상황이나 맞지만, 따지고 보면 개념없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00일 휴가 복귀 때 사제 땡땡이 팬티를 입고 온 이등병은 개념이 없는 게 아니라 개념이 있고 용기도 있고 똘기도 있는 경우다. 사제팬티를 입고 오면 뒤진다는 것을 아는데도 용기내어 똘기를 부린 것.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요'라고 말하는 후임병도 개념이 없다기 보다, 아닌 것을 아는데도 습관상 나온 말일 게다.

11월 중순에 입대하고 102보에서 3일을 지낸후 도착한 신병교육대는 강원도 어느 사단.
향토사단에서 승격된지 얼마되지 않아 신병교육 6주동안 신병이 지낼 건물이 부족했다.
그래서 연병장 한 귀퉁이에 24인용 텐트를 10동 설치해 한 소대당 2동씩 쓴다.

강원도의 11월이면 굉장히 춥다.
텐트안에 기름난로가 있지만 잘 때지도 않을 뿐더러 때도 그게 그거라 텐트안에서도 입김이 나올정도다.
텐트안은 일반 내무반처럼 반 딱갈라서 침상이 양쪽에 있고 가운데가 통로다.
밤에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자고 일이나면 발쪽은 얼어있는 느낌이다.

<저런 24인용 텐트를 내무반으로 만들어서 살았다>



지금은 헛웃음만 나오는 표현이지만 훈련병도 '꺽인다'.

때는 크리스마스 이틀전.
우리소대 내무반장은 병장 3호봉, 부내무반장은 11월에 이병 말호봉, 12월에 진급한 일병.
이것은 행운이었다. 병장은 귀찮아서 갈구는 게 덜하고 이등병은 FM대로 하려 하나 갈구는 게 어설프다.
어쨌든 꺽인 훈련병들에게 조교들은 풀어주는 경향이 있다.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한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내무반장은 가끔 들어와서 용기나는 얘기도 해주고 웃겨주고 가기도 했다.
부내무반장은 아예 우리랑 정겹게 놀 지경이었다.

12월 23일 저녁 청소를 끝낸후 9시 10분경. 내무반장이 훈련병들에게 온 편지와 하나의 소포를 들고 등장했다.
편지를 나눠주고 나면 또 웃겨주거나 분위기를 훈훈하게 할 요량임이 분명하다. 표정부터 밝았다.
편지는 문제가 아닌데 소포가 문제다. 훈련병에게 소포가 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고 오더라고 퇴소할 때 나누어 주기 때문에. 하지만 이 화목한 분위기에 그 깟 소포쯤.

내무반장이 소포를 문제의 훈련병에게 전해주면서

" 아버지가 옥편을 보냈다. 아버지 뭐하시냐?"
" 한약방 하십니다"
" 한자공부하라고 보내줬고만 하하"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짓고 좌중을 돌아보며 '오늘도 수고했다'는 식의 말을 할려던 참이다.

" 제가 심심해서 보내달라고 그랬습니다"

.....



사람이 당황하거나 화가 나는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5초쯤 흐른 것 같다.
그 온화한 내무반장이 군화발 그대로 침상에 올라가 그 문제의 훈련병의 복부를 즈려밟아 넘어뜨렸다.
분위기는 실미도에서 나오는 조교들이 30연타로 애들을 밟는 것이었지만, 말년에 꼬이면 뭐된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는지,

"심심해? 지금 심심하다고했냐? 이것들이 군생활 편하고만, 다 침상끝에 엎드려"

침상끝에 엎드리는것은 침상끝선에 배꼽을 대고 엎드려 손은 열중쉬어 자세를 하는 것. 허리, 배, 등, 허벅지, 장단지 안 아픈데가 없다. 통로가 넓지 않기 때문에 반대쪽 침상에 있는 사람들과 엇갈려 엎드렸고 우리들의 대가리들이 교차하고, 양사이드에서 나오는 신음소리와 땀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했다.

개념이 없다는 말은 저럴 때 쓰는 말이다.
저건 용기도 아니고 똘기도 아니다.
사실 그 친구는 훈련에서도 모자라지 않았고 기타 내무생활에서도 준수했다.
고문관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는 말.
즉 심심해서 보내달라고 한 것은 전적으로 전혀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이지 개념을 버리고
"이것들이 아니라 이것이 심심한 겁니다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점호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뜻밖의 행운이다. 점호가 끝나면 소등하고 취침을 하기 때문에.
훈련병의 낙이라면 그것도 편지한장 올데 없는 훈련병들의 낙이라면 종교행사의 초코파이, 중대장이 선심써서 가능한 PX추진, 그리고 꿀맛같은 취침이다.
15분만 이러고 있으면 점호하고 달콤한 꿈나라로 간다.

점호가 끝났다. 소등을 했다. 부내무반장이 후레쉬를 켠다.
내무반장은, 이제 제대 3개월 남으신 병장님은 그런일로 취침시간에 막사에 오지 않는다.
뽀글이 해먹고 드라마를 봐야 하기때문에.

부내무반장,
"조용히 일어나서 어깨동무. 앉았다 일어섰다 100회"
숫자는 분대장이 나긋나긋하게 세기로 했다.
음..달갑진 않아도 100회면 뭐.
앉았다 일어났다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게다가 어깨동무를 하고 하는 것은. 옆사람이 요령을 피워 구부정하게 앉으면 양옆사람은 더 힘들다.

100회가 끝났다. 땀 난다.
"100회 다시 실시"
덥고 힘들고 다리 아프다.

부내무반장은 우리에게 얼차려를 주고 있지만 자기는 신났다. 뽀글이를 먹으며 키득댄다. 별로 밉지는 않다. 우리에게 잘해준 편이다.
"다시 100회"
그래 300개쯤은 해야지.
"다시 100회"
500개쯤 시킬 작정인가? 어휴 힘들다 빨리 하자.

500회 끝난 후.
"온도가 19도까지 올랐네. 25도까지만 올리자"
텐트의 온도는 기껏해야 6-7도였다. 500개만으로 10도가 넘게 올랐다.
500개 더하면 25도까지 오를 것 같다.
800개를 했다. 25도가 되었다고 했다.

"1000개는 해야지" 죽을래.

1000개 했다. 27.5도란다.
나갔다 오더니 우리 텐트에서 불난 것 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단다.

땀은 비오듯 흘러 다들 입고있던 내복이 흠뻑 젖었다.
이제 침낭속으로 기어 들어가 자란다. 할렐루야.
땀이 그대로 있으니 침낭도 축축해 쳤다.

겨울에 땀 나게 운동하고 추위속에 머무르면 평소에 느끼던 추위의 몇배를 느낀다.
그 때가 그랬다. 외부 온도는 영하권.
텐트안의 27.5도의 온도는 금방 열을 뺏겼다.
침낭속에서 오들오들 떨면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침낭발쪽이 땡땡 얼었다. 땀이 그 쪽으로 모여 언듯하다.
텐트안의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와 코는 감기증상 100%였다.
일어나서 알통구보를 하고 훈련하러 나간다.
저녁에 왔더니 감기걸린사람 아무도 없다. 군대의 신비다.

정말이지 개념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제발 개념 좀 갖고 살자.

혹시 그 훈련병이 본다면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음.... 우린 동기인데 내가 나이 더 많다. 췟.